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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에 독(毒)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害)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어도 머지 않아 너 나 마주 가버리면
억만 세대(億萬世代)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虛無)한듸!'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魂) 건지기 위하여.
poet 2009/03/19 17:26
TAG 김영랑
마지막 집 뒤로 고요히
붉은 해가 잠자러 갑니다
경건한 마지막 고음으로
하루의 낮이 조용히 막을 내립니다

지붕 곳곳에
남아 흩뿌려진 햇빛은
아직도 숨바꼭질을 합니다
저 멀리서 밤은
금가루를 뿌리고 있는데...


poet 2009/03/19 17:25
TAG RM 릴케
마음, 내 마음아, 슬퍼하지 말고

운명을 감수하여라

겨울이 빼앗아간 네 운명을

봄이 되돌려 줄 것이니


너의 미래는 아직 많이 남아 있고

세상은 아주 아름답다

마음아, 넌 사랑할 수 있다

네 마음에 드는 모든 것을.
poet 2009/03/19 17:25
TAG 하이네
옛사람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싶을 때가 있다

배낭을 맨 채 시적시적

걸어들어가고 싶을 때가 있다

주막집도 들어가 보고

색시들 수놓은 골방문도 열어보고

대장간에서 풀무질도 해보고

그러다가 아예 나오는 길을

잃어버리면 어떨까

문득 깨달을 때가 있다

내가 오늘의 그림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나가는 길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두드려도 발버둥쳐도

문도 길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오늘의 그림에서

빠져나가고 싶을 때가 있다

배낭을 메고 밤차에 앉아

지구 밖으로 훌쩍

떨어져나가고 싶을 때가 있다
poet 2009/03/19 17:25
TAG 신경림
 
설탕에 절인 과일처럼 달콤한 눈이 숲속에 쌓여 있습니다.

떠나오기를 참 잘했습니다. 나무도 아마 발이 시리겠지요.

그러나 우리 같은 사람이 자연에 대해 무엇을 알겠습니까?

설탕처럼 하얀 눈

사람들은 아이 적에 모두 그렇게 믿었지요.

어째서 오늘 다시 그런 생각이 문득 났을 까요?

세상은 매력적인 곳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을 뿐

송이 송이 눈꽃송이가 하늘에서 발레라도 추는 듯 황홀하게 내립니다.

구두속으로 차갑게 눈이 녹아 듭니다.

이렇게 홀로 숲속을 걷노라면 사람들이 왜 사무실로 몰려 들어가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온 세상의 가치가 비틀거립니다.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poet 2009/03/19 17:24
 
미움이란 말....

미움이란 말속에 보기 싫은 아픔

미움이란 말속에 하잔한 뉘침

그러나 그 말씀 씹히고 씹힐 때

한꺼플 넘치어 흐르는 눈물

poet 2009/03/19 17:24
TAG 김영랑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디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 하여,

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사느니라.

poet 2009/03/19 17:23
TAG 이병기
보았습니다

별하나가 조용히 반짝이고 있음을.

나는 느꼈습니다.

'어두운 밤에는 이 별을 따라 꽃을 피리라'하던

당신의 말씀을 .



나는 온 힘을 다해

곧고도 민첩하게

몸을 뻗었습니다.

그러나 꽃을 피우는 일은

나에게 너무도 힘겨웠습니다.

poet 2009/03/19 17:23
TAG RM 릴케
눈을 감고 잠잠히 생각하라

무거운 짐에 우는 목숨에는

받아가질 안식을 더 하랴고

반드시 힘있는 도움의 손길이

그대들을 위하여 내밀어지리니.

그러나 길은 다하고 날 저무는가,

애처러운 인생이여

종소리는 배바삐 은들리고

애꿎은 조가(弔歌)는 비껴 울 때

머리 수그리며 그대 탄식하리.

그러나 꿇어 앉아 고요히

빌라 힘있게 경건하게,

그대의 맘 가운데

그대를 지키고 있는 아름다운 신을

높이 우러러 경배하라.

멍에는 괴롭고 짐은 무거워도

두드리던 문은 멀지않아 열릴지니

가슴에 품고있는 명멸(明滅)의 그 등잔을

부드러운 예지(叡智)의 기름으로

채우고 또 채우라.

그리하면 목숨의 봄두던의

살음을 감사하는 높은 가지

잊었던 진리의 몽우리에 잎은 피며

신앙의 불붙는 고운 잔디

그대의 헐벗은 영을 싸 덮으리.
poet 2009/03/19 17:23
TAG 김소월
나는 그 여자가 혼자

있을 때도 울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혼자 있을 때 그 여자의

울음을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 여자의 울음은 끝까지

자기의 것이고 자기의 왕국임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그러나 그 여자의 울음을 듣는

내 귀를 사랑한다
poet 2009/03/19 17:22
TAG 정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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